도서명 : 동원비위론역석
판매가 : 20,000원
저자 : 대전대학교 한의과대학 제5기 졸업준비위원회 편
페이지수 : 350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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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東垣先生은 周知하는 바와 같이 金末•蒙古初의 大學者로 內外傷辨惑論, 脾胃論, 蘭室秘藏(東垣試效方), 傷寒會要, 傷寒治法擧要, 治法機要, 醫學發明, 萬愈方, 醫學辨惑論, 用藥珍珠囊(用藥法象), 瘡瘍論 등의 冊을 지었다고 하나 지금 現存하여 많이 읽혀지고 있는 冊은 內外傷辨惑論, 脾胃論, 蘭室秘藏의 三書이다. 東垣先生이 살았던 시대는 蒙古와 金이 격렬히 다투던 시기였으므로 백성들이 굶주림과 공포에 시달리면서 流離失所하였으므로 脾胃계통의 病이 특히 많아 임상에서 補土를 중시했으므로 후세에 그를 補土派라 하였다. 이는 질병의 원인을 外部의 因子로 돌렸던 劉完素, 張子和와는 그 理論을 완전히 달리 하는 것이다. 邙城 硯堅이 쓴 東垣老人傳을 보면 그가 濟源縣에서 벼슬할 때 그곳의 백성들이 時行疫病에 感觸되어 苦生할 때 여러 醫師들이 方書를 두루 硏究하였으나 치료하는 法이 없자 各自의 意見으로 妄下之하여 죽는 자가 많았지만 구제할 방도가 없었다고 한다. 이에 東垣先生(이때는 아직 醫師로서 자신을 표방하고 있지 않던 때이다)이 寢食을 폐하고 그 病을 硏究하여 하나의 處方을 구성하여 환자에게 투여하니 즉시 효과가 있었다. 그리하여 이 처방을 나무에 새겨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걸어두니 그것을 보고 쓰는 자마다 효과를 보지 못하는 자가 없었으며 당시의 사람들은 이를 仙人所傳이라 하여 돌에 새기기까지 새겨놓았다고 하니 그는 또한 仁術의 實踐者였음을 엿볼 수 있다.